부처 ‘쌈짓돈’ 전락한 정부 기금
예산을 정부가 사용하는 자금이라고 할 때 연간 예산의 규모는 얼마일까. 이에 대한 정답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다.
정부는 일반회계 201조원 이외에 특별회계 18개 종류에 62조원, 기금 64개 종류에 515조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부가 많다 보니 정부도 혼란스럽다. 일반회계에서는 돈이 부족해 국가 부채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는데, 개별 부처들이 관리하고 있는 각종 기금에서는 여유 자금의 이자 계산을 하고 있다.
기금은 2014년 기준으로 1416조원의 적립금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 적립금의 이자로 사업을 하거나 적립금을 재원으로 융자를 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저금리와 민간의 초과 자금 공급시대에 재검토돼야 할 과제를 제기한다. 저금리 시대에 자금을 묶어 두고 발생하는 이자로 사업을 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저금리로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더군다나 민간에서도 여유 자금이 넘치고 있는데 정부가 별도로 자금을 지원하는 창구를 관리할 필요도 줄어들고 있다.
물론 공무원연금기금·국민연금기금 등 연금과 관련한 사회보험성 기금은 원금을 건드리면 안 된다. 그러나 일반회계 사업과 구분되지 않는 44개의 사업성 기금은 개혁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보증 기능을 수행하는 9개의 금융성 기금도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 개혁이 필요하다.
기금의 개혁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각 기금의 명칭에 있는 발전·진흥·보호·지원 등의 용어에서 보듯이 개별 기금은 부처 이기주의와 이익집단의 협력을 보장하는 고리가 된다. 한 부처가 여러 개의 기금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지관리기금·축산발전기금 등 8개 기금,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진흥개발기금·문화예술진흥기금·문화재보호기금·국민체육진흥기금 등 6개 기금은 하나하나에 기득권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원전 비리, 해양 비리에도 기금이 있다. 수산발전기금·원자력연구개발기금 등을 통해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통로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중소기업진흥공단·문화예술위원회·한국토지주택공사·농어촌공사·국민체육진흥공단 등과 같이 기금을 관리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기금 개혁이 곧 정부 개혁인 이유다.
물론 그간 기금에 대한 개혁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개별 부처가 마음대로 설치해 운영하던 기금을 1991년 기금관리기본법 제정 이후 예산실이 통제하고 있다. 99년 법 개정을 통해 기금운용평가제도를 도입했고, 2001년 개정을 통해 국회에서 심의하도록 하면서 기금 존치평가도 도입했다. 2006년에는 기금관리기본법을 폐지하고 국가재정법으로 통합하는 노력도 보였다.
그러나 정부 개혁이 결국은 무력화됐듯이 이러한 개혁에도 불구하고 칸막이식 운영의 행태는 여전하다. 기금 존치평가를 하고 있지만 외부 전문가가 작성했다는 보고서를 보더라도 관료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지적만 있지 본질적인 지적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 개혁이 결국은 관료가 수용하는 범위, 아니 어쩌면 관료가 ‘승인’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식적인 법 개정과 별개로 과거의 행태에 근거한 기금 운영은 여전하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자금을 운영할 필요가 있을 때”에 “세입 세출 예산에 의하지 아니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법 규정에서 보더라도 매우 특이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64개의 별도 기금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의 일상화가 형성돼 있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나.
이제 정부 개혁의 어젠다로 재정 개혁이 포함되고 그 한가운데 기금 개혁이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일반회계가 정상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정 정책을 위한 자금을 지출하더라도 일반회계에서 하면 되는 것이지 개별 부처가 별도 장부를 차고 있을 필요가 없다.
고유 목적 사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기금은 폐지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사업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일반회계를 통해 우선순위를 평가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융자성 자금에 대해서도 융자의 수요와 사업 효과를 평가하고 과다 적립된 자금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 보증과 관련한 기금도 과다 지원된 정부 출연금을 회수하는 것 또한 개혁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각종 정책금융에 대한 개혁도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기금 개혁은 단순히 자금을 확보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정부 개혁의 연장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원희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획예산처 기금운영평가단, 경실련 예산감시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쳤다. 전문분야는 재정. 저서는 『시민이 챙겨야 할 나라 가계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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